by 황도연 기자 2023.09.29
대한민국 참 살기 좋은 나라다. 도포, 의사 가운, 스포츠복, 슈트까지 종류별로 걸쳐가며 남친룩 로망을 실현시켜주는 ‘랜선 남친’ 안효섭(28)을 방구석 1열에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최근엔 첫사랑 판타지 끝판왕인 교복을 입고 싱그러운 소년미를 가득 뿜어내며 ‘효친자’들의 학창 시절 기억을 조작 중인 이 배우, 유죄 인간임이 틀림없다. 드라마 폐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효섭’ 한 명쯤 품고 사는 것 아니겠나. ‘확신의 남주상’ 안효섭이 다음번엔 또 어떤 멜로 캐릭터로 여심에 불을 지필지 몹시 기다려진다.



<상견니> 리메이크작의 남주가 안효섭이라니, “그랜절 받아 마땅한 캐스팅”이라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거죠. <너의 시간 속으로> 출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땐 원작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냥 새로운 드라마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리메이크작이었더라고요. 처음에 2회 분량만 받아서 읽었는데 와, 진짜 재밌는 거예요.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어요. 타임슬립 작품 특성상 짜임새가 촘촘하지 않으면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는데, 이 드라마는 스토리의 짜임새가 디테일하고 탄탄해요. 대본 보자마자 꼭 출연해야겠다 싶어서 바로 전화 걸어서 미팅 잡아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대본 읽으면서 여러 번 소름 돋았다면서요. 어떤 부분에서 전율을 느꼈나요?
초반에는 준희(전여빈)만 타임 슬립을 하는 내용인 것처럼 나오는데, 후반부에 보면 시헌이도 타임 슬립을 했다는 게 밝혀져요.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시헌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확 되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때 소름이 돋더라고요. 준희를 만나기 위해 시헌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가슴에 와닿아서 감동이 크게 왔죠.
1인 2역을 연기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그런 건 없었어요. 한 작품 안에서 1인 2역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아예 새로운 두 작품을 각각 연기한다고 생각하고 임했거든요. 두 인물의 시대도 배경도 성격도 다르기 때문에 아예 분리해서 캐릭터 분석을 했어요.




카세트나 마이마이가 익숙지 않은 MZ세대로서, 남시헌을 연기하면서 세대 차이를 느끼기도 했나요?
생각보다는 못 느꼈어요. 1990년대를 다룬 작품이긴 하지만, 제 학창 시절과 크게 다르진 않더라고요. 카세트 플레이어도 제가 직접 쓴 적은 없긴 한데, 어릴 때 아버지가 카세트로 클래식 많이 틀어주곤 해서 그렇게 낯설진 않았어요. 아, 근데 마이마이(?)는 뭔지 잘 몰랐는데 이번에 알았어요(웃음). 이렇게 생긴 기계가 집에 있긴 했던 거 같긴 한데, 뭔지 정확히는 몰랐거든요. 저는 MP3 세대다 보니 좀 생소하긴 했죠.
원작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과제는 리메이크작이 가진 숙명이기도 하죠. 촬영에 임하면서 부담감도 컸을 거 같아요.
솔직히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원작을 접하지 않고 촬영을 해서 그런지 ‘원작보다 잘돼야 한다’는 부담감은 크게 없었어요. 감독님께서 작품을 할 때 원작을 안 봤으면 좋겠다고 하시기도 했고, 사람 심리라는 게 뭔가를 보고 나면 의식을 안 하려고 해도 선입견이라는 게 생겨버리잖아요. 그냥 저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리메이크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새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임했어요. 이제 우리 작품이 공개됐으니, 원작도 챙겨보려고 해요. <상견니>와 <너시속>이 어떻게 다를지 확인해보는 재미가 있을 거 같아요.
여주인공인 전여빈 배우가 효섭 씨 외모 때문에 촬영 내내 설레었다고 밝혔던데, 여심을 공략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하하하. 여심을 공략 위한 건 아니었지만, 어려 보이고 싶어서 노력한 부분이 있긴 해요. 고등학생 분량을 찍을 땐 소년미가 느껴지도록 볼살이 있으면 좋을 듯해서, 일부러 살을 좀 찌웠어요. 마침 벌크업된 몸이 나오는 장면을 찍어야 해서, 아예 체중을 늘렸죠. 소년 구연준과 성인 얼굴을 한 구연준과 극명한 차이를 줘야겠다는 의도도 있었고요.
애틋한 로맨스 호흡을 맞춘 전여빈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여빈 누나를 처음 접한 작품이 <빈센조>여서 그런지, 솔직히 되게 적극적이고 강한 성격일 줄 알았어요. 근데 막상 만나보니 전혀 아니었어요. 세상 여리여리하고 순한 사람이에요. 배려심 넘치는 누나 덕분에 현장에서 편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었어요.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 찍을 때 캐릭터 연기를 위해 필라테스랑 성우학원을 다녔던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새롭게 등록한 학원이 있나요?
이번에는 따로 학원을 끊지는 않았고(웃음), 대신 만화책을 많이 봤어요. 고등학생의 텐션을 끄집어내기 위함도 있었고, 작품 속에서 인규랑 시헌이가 만화책을 좋아하는 설정도 있어서 엄청 읽었어요. 아, 만화책과 관련된 비하인드가 하나 있어요. 원래 대본에는 어른이 된 시헌이의 직업이 배달 앱 회사 대표였는데, 이게 뭔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작가님께 ‘시헌이가 만화책을 좋아하니까 웹툰 회사 대표로 하면 어떨까요’하고 제안을 드렸는데, 흔쾌히 받아주셔서 시헌이의 직업이 바뀌었답니다.

팬미팅 얘기 좀 해볼까요?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이 났다고 하던데, 수많은 팬들을 만난 소감 안 물어볼 수가 없어요.
말로 다 표현 못 할 정도로 감사했죠. 그동안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해와서 팬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온라인상에서 댓글을 많이 달아주시긴 하는데, 직접 대면한 적이 없으니 ‘이분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거든요(웃음). 근데 정말 많은 팬들이 반겨주셔서 되게 신기하고 놀라웠어요.
공연 짤 보면서 아이돌 팬미팅인 줄 알았어요. 태양 ‘Vibe’ 무대가 엄청 화제가 됐는데, 춤 실력이 상당하던데요.
솔직히 춤 연습 열심히 했어요. 100%의 무대를 보여드리려면 200% 준비를 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를 보기 위해 와주신 분들의 발걸음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았고, 안효섭을 잘 모르는 분들이 봐도 재밌을 만한 공연을 만들고 싶어서 준비 진짜 많이 했어요. 그동안 음악에 대한 갈증이 좀 있기도 했는데, 이번 팬미팅을 통해 원 없이 해소했죠. 하핫.
춤만 잘 추는 게 아니라 노래,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공부, 운동까지 못 하는 게 없는 ‘엄친아’던데요. 학구열이 엄청난 편인가 봐요.
뭔가를 배우는 걸 좋아해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잘 하고 싶은 욕심이 많아요. 사실 이런 성격 때문에 좀 힘들기도 해요.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이 되질 않고, 자꾸만 부족하다고만 느껴지거든요. 그래도 요즘은 내려놓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신기하게도 잘 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니까 일이 더 잘 풀리더라고요.




<홍천기>, <사내맞선>, <김사부>, <너시속>까지 4연타 흥행에 성공 했는데, 선구안 비결이 궁금해요.
흥행에 대한 부분은 운이 좋았던 거라 생각해요. 성공만을 위해 작품을 고르진 않거든요. 작품을 선택할 때 ‘지금 이 세상에 필요한 작품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에요. 안 그래도 힘들고 피곤한 세상인데, 더 피로감을 주는 작품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너의 시간 속으로>를 택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저는 이 작품을 연기하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끼곤 했어요. 제게 힐링과 위로가 되어준 작품이죠. 시청자들도 주인공들의 순정 그 자체인 사랑을 보면서 가슴 한 곳이 말랑말랑해졌으면 좋겠어요.
안효섭을 ‘랜선 남친’으로 만들어준 대표 캐릭터들이 있지요. 하람 VS 강태무 VS 서우진 VS 남시헌. 실제로 본인의 모습과 가장 비슷한 캐릭터는 넷 중 뭔가요?
다 제 모습이 조금씩 들어가 있지만, 연기하면서 가장 와닿았던 건 서우진이었어요. 심적으로 되게 복잡한 시기에<김사부2>를 찍었어요. 그래서인지 우진이가 돌담병원에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꼭 저를 보는 거 같았어요. 우진이가 닫혀있던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아우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잖아요. 실제 저도 딱 그랬어요. 그 작품을 하면서 사랑을 갈구하기만 했었는데, 마음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고, 마음의 평온도 많이 찾았어요. 돌이켜 보면, 작가님이 안효섭이라는 사람을 좀 읽으시고 글을
쓰신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 시기 제 상황과 감정이 많이 투영된 캐릭터라 우진이에게 맘이 많이 가요.
강박에서 벗어나 내려놓는 법을 배웠던 시기가 <낭만닥터 김사부2>를 찍을 때쯤부터였나요?
아니요, 좀 됐어요. 3~4년 전쯤이었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접하고 부터였을 거예요. 좀 오그라들지만, 이 책을 읽고 참 많이 울었어요. 원래 잘 안 우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충격적이고 감격스럽게 다가와서 눈물이 났어요. 그동안 인생을 너무 경직된 상태로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이 책이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생각해요. 그때부터 많이 내려놓고 세상을 좀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2015년 데뷔한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해왔어요. 쉼 없이 연기하면서 슬럼프가 온 적은 없었나요?
물론 있었죠. 저는 성향 자체가 되게 긍정적인 편이에요. 아무리 힘들어도 웬만하면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정신으로 버텨요. 근데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혀보니까 내 맘이 내 맘대로 안되더라고요. 이걸 흔히들 ‘번아웃’이라고 한대요. 어떤 작품을 찍을 때였다고 말하진 못하지만, 그게 좀 세게 왔던 적이 있어요. 어느 정도였나면, 숨 쉬는 게 귀찮았어요. 그때는 모든 의지와 욕구가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어요. 체력이 무너지면,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알았어요. 쉼의 중요성을 크게 깨달았죠.
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하기에는 작품 활동에 화보에 해외 일정까지, 스케줄 표가 꽉꽉 차있던데요.
하하. 이것도 나름 쉬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요즘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제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저는 이 정도의 쉼이 필요했어요. 일주일에 단 하루도 못 쉴 만큼 빡빡하게 살았었거든요.


쉬는 날엔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드라이브도 종종 즐기고, 조용한 카페 가서 책 읽는 거 되게 좋아해요. 사실 완전 집돌이였는데, 요즘엔 좀 나가서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원래는 누가 나오라고 연락 오면 무조건 ‘NO’였어요. 전화도 잘 안 받고 집에만 있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 ‘내게 찾아온 행복의 기회들을 내가 발로 차버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예스맨’으로 바뀌었어요(웃음). 후회를 하더라도 일단 나가려고 해요.
쉴 때 본인 기사나 댓글도 좀 찾아보는 편인가요?
댓글을 다 읽어봐요. 저는 좀 특이한 게 악플 읽어보는 거 굉장히 좋아해요(웃음). 부정적인 반응을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1’도 없는 성격이에요.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글을 쓴 지 이해가 돼서 그냥 흥미로워요. 그리고 팩폭하시는 분들 간혹 계신데, 저에게 도움이 되게 많이 돼요. 저도 약간 느끼고 있던 포인트를 짚어주실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서른이 머지않았어요. 30대를 어떻게 맞고 싶나요?
어떻게 미래를 그려나가야겠다, 하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아요. 많은 분들이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를 불안해하면서 살아가곤 하잖아요. 근데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30대에도 딱 지금처럼만 살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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